순례 주택

- 유은실 지음 -


표지

오늘의 책 리뷰는 '순례 주택'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 갔다가 눈에 띄는 표지를 가진 '순례 주택'이란 책을 발견했다. 무슨 내용인지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음에도 그냥 벽돌집 같은 표지가 매우 인상적이어서 이 책을 선택했던 것 같다. 단순히 호기심에 선택한 책이었지만 내용은 매우 흥미로워서 한 자리에서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또,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문체와 생활 언어라서 청소년들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1인칭 주인공 시점, 열여섯 살의 오수림.
거북중학교 3학년 학생으로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수림이네 식구는 엄마, 아빠, 언니 이렇게 네 식구다. 그들은 외할아버지 소유인 원더 그랜디움 아파트에서 호사를 누리며 살았다. 그러다 네 식구가 쫄딱 망한 뒤, 외할아버지의 전 여자 친구의 빌라 '순례 주택'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그들의 입장에서는 유쾌하지 않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유쾌하고 흥미로운 일들을 겪게 된다.


이 책의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드는 생각은 어른들이 어른답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15년째 대학 시간강사로 고군분투하며 가족을 온전히 책임지지 못하고 고모들에게 계속 손을 벌리는 아빠, 친정아버지의 돈을 수시로 갖다 쓰고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니 그 충격 때문에 돈 버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엄마, 그리고 공부는 잘하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언니 오미림까지.
어느 하나 진정한 어른이 없다.
오직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가장 어린 중학교 3학년 오수림이만이 어른다운 생각을 가진 아이였다.


이런 철없는 가족을 순례 씨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순례 주택에 살 수 있도록 품어준다.

그리고 순례 씨는 '감사'라는 말을 잘한다.
"내줄 공간이 있어서 다행이야. 감사해"

순례 씨가 좋아하는 유명한 말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

수림이는 순례 씨의 말처럼 순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꼭 순례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자기 인생의 관광객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순례 씨에 대한 감사함은 수림이만이 온전히 느낀다.


특히, 인상 깊은 구절은 이 부분이다.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내가 생각하기에 이 대사가 '순례 주택'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삶의 가치관과 방향성이 아닐까?


또, 순례 씨는 환경에도 관심이 많다.
썩지 않는 쓰레기가 될 물건을 거의 사지 않으며 꼭 필요한 물건은 자원 순환을 위해 중고로만 산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차 타는 것도 싫어한다. 썩지 않는 쓰레기,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 쓰고 남는 돈. 이것이 순례 씨의 3대 고민이다.

'순례 주택'은 수림의 엄마 아빠가 순례 씨의 재산을 수림이에게 물려줄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기대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결국 순례 씨의 재산은 순례 씨의 친아들도 아닌 '국경 없는 의사회'에 기부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수림의 엄마와 아빠는 허무함을 드러내며 체념한다.

이야기의 끝은 다른 소설과 달리 수림의 엄마와 아빠가 갑자기 착해지거나 하는 비현실적인 상황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엄마는 새벽 김밥 알바를 계속했고, 아빠는 여전히 전임교수를 꿈꾸며 둘째 고모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런 우리 삶 속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갈등들
(빌라촌과 아파트촌의 갈등, 우등생과 열등생의 대비, 고학력자의 취업난, 무차별적인 쓰레기 문제 등)을 이 소설 속에서나마 조금씩 다루어주어 독자들로 하여금 한 번씩은 해당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인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내 인생의 순례자가 되는 길이겠지?

+ Recent posts